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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지식들/유익한 역사 지식

이승만 대통령의「악력 사항들」

 

 



이승만 대통령의 약력 사항


1) 이승만의 이력
출생 : 1875~1965, 호는 우남, 황해도 평산 출생.
학력 : 1895~1897년 배재학당 졸업, 졸업생 대표로 영어연설, 1905 조지워싱턴대학 2학년 편입, 1907 졸업. 1910 하버드대학교 졸업(석사학위), 1912 프린스턴대학교 졸업(박사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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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 중립론(지도교수 : 우드로 윌슨 28대 대통령)

2) 이승만의 옥중 활약
이승만은 18991월 대한제국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9048월까지 만 57개월간 서울 종로 서린동에 있던 한성감옥에서 옥살이를 했다. 투옥된 이유는 매일신문과 제국신문 등 자신이 직접 창간에 간여한 언론매체가 고종황제의 보수정권을 신랄히 비판함과 동시에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총대위원으로서 극렬한 반정부데모를 조직 선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감옥살이를 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모진 고문을 거뜬히 이겨냈으며 후일 그는 자기의 자서전에서 나는 6년 반 동안의 감옥살이에서 얻은 축복에 대해 영원히 감사하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40여 명의 양반 출신 관료, 지식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옥중생활 중 옥중학교를 개설하여 죄수 50여 명에게 영어, 한글, 한문, 신학, 국사, 지리 등을 가르쳐주고 성경과 찬송가도 가르쳤다.
이승만은 선교사들이 차입해준 523권의 책을 가지고 옥중서적실(도서실)을 개설 운영하였다. 그는 옥중에서 야심적인 것은 영한사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A~F항까지 만들었고, 이것이 완성되었다면 우리나라 영어교육사상 빛나는 금자탑으로 남았을 것이다. 영어사전 편찬 작업을 끝내지 못한 이유는 작업 도중 러일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는 옥중에서 독립정신이라는 책120수의 한시를 짓기도 하였다.

 

 

3) 정읍 발언
1946320일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소련국 측의 목표는 한반도 전체에 걸친 좌익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고, 미군 측의 목표는 이승만, 김구 우탁 대신 진보적 색깔이 농후한 김규식, 여운형 등 중도파를 중심으로 한반도 전체를 미국 민주당정부와 같은 진보적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이러한 배경을 인식한 이승만은 194663일 전북 정읍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38이남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워 우선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승만의 안을 한민당만을 제외한 미군 정부를 포함한 모든 민족세력의 결사반대운동이 일어났다. 미군정은 이승만의 제안과는 상관없이 김규식의 온건우파와 여운형온건좌파를 결합한 좌우 합작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이에 놀란 이승만은 반대의 뜻을 미국정부에 직접 호소하기 위해 194612월 미국으로 떠났다. 워싱턴에 도착한 이승만은 서울 미군정의 좌익 지원을 비난하고,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4) 마지막 개화파이자 보수 세력의 시조
이승만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 신상처럼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제국 마지막 세대의 개화파이자 대한민국 보수 세력 시조라 할 그는 건국의 아버지 또는 위대한 정치가, 자주적 지도자 라는 최상의 찬사를 받는가 하면 분단과 독재의 원흉 또는 친일파를 감싸고 민족정기를 흐려놓은 위선자, 장기집권자라는 극도의 폄하를 동시에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