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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6.25전쟁)의 원인 규명 -「북한의 남침설」

 

 



한국전쟁의 원인 규명 - 「북한의 남침설」

 

1. 남침설

 

1) 스탈린이 남침을 승인한 배경
첫 째는 스탈린이 베를린 봉쇄사태 등 유럽에서 미국과의 냉전에서 밀리자 한반도를 택해 미국과 대결하고 극동에서 새로운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스탈린 본인은 철저히 배후에 숨기고 김일성을 앞세워 슬그머니 전후 질서에 현상 변경을 기하려고 했다.
두 번째는 스탈린의 마음 속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 인천과 부산, 제주와 같은 부동항을 차지하게 되리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부동하는 얼지않는 항구로 미국에 비해 부족한 해군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소련도의 한반도에서 영향력 강화는 장차 일본이 과거 그들의 아시아 대륙 침략의 교두보였던 한반도에 재진출을 막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6.25 전쟁은 개전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스탈린의 철저한 감독을 받으면서 진행되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에 필요한 무기를 공급해주고 중공군 소속인 한인 부대를 북한군에 편입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2) 모택동, 스탈린 조회
1950330일부터 425일까지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하고 귀국한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비행기 편으로 북경으로 날아갔다. 그는 이날 밤 중국지도자들과 김일성으로부터 스탈린이 그의 무력통일 계획을 승인했다는 말을 중국 측은 믿지 않아 그날 밤 회담은 중단되었다. 중국 총리겸 외상 주은래는 소련대사관을 찾아가 로쉰 대사에게 모택동의 부탁이라면서 김일성의 말을 스탈린이 직접 확인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소련 측은 김일성 동지의 제의에 동의했다며 동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만일 중국 동지들이 거절한다면 새로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이 문제는 연기되야 한다고 피력했다.

3) 스탈린과 모택동으로부터 남침 허락을 받다.
전쟁 직전 김일성은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수차례에 걸쳐 남침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남로당 지도자였던 박헌영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던 남한의 적화를 위해 하루빨리 소련의 원조를 받아 남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과 중국 등 공사권 자료를 종합해보면 6,25전쟁은 북한, 소련, 중국이 사전에 긴밀하게 공조하여 일으킨 전쟁임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의도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설득해 전쟁 지원을 받고 시작한 전쟁이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한반도에 미국의 군대를 고착시켜 미국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키겠다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김일성의 청을 들어주었다.
김일성은 19493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남친계획을 승인받으려 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군이 북침했을 경우에만 반격할 수 있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후 김일성의 끈질긴 교섭 끝에 중국의 모택동이 협력하는 것을 조건으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남침 약 40일 전인 그해 515일 중국으로부터 모택동을 방문하고 중국 측의 동의도 받아냈다.

 

 

4) 북한과 소련, 북한과 중국 군사비밀협정을 맺다.
북한은 1949년 소련과 경제, 문화 협정을 맺은데 이어 군사원조를 내용으로 하는 군사비밀협정을 체결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또 중국과도 군사비밀협정을 맺어 1949년 중반부터 1950년 초까지 4만 명 남짓한 조선의용군을 인민군에 편입시켰다.
이른바 모스크바에서 소, , 3국 한반도 무력통일에 관한 전략회의가 개최되었었고, 1949. 3월초 제 2차 회동에서는 1949~506월 군비증강책을 결정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현 정세에서는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이 남한정부를 무력공격하면 남북 양쪽의 인민들이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무력통일을 안 하면 통일이 연기될 뿐이고 그동안 남한정권은 좌익세력을 탄압하며 북진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결국은 북한 건설을 수포로 돌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5) 강동 정치학원을 설립하다.
북조선노동당은 19478월 미군정이 공산당 활동을 불법화하자 월북한 남로당 당원들을 강동 정치학원에 들여보내 대남 공작훈련과 유격전 위주의 군사훈련을 시킨 뒤 남파시켜 남도당의 유격투쟁을 지원했다. 6.25에 일찌감치 대비했다.

6) 남침 준비 완료
김일성은 1948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중국 북한 3국의 군 수뇌 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에 따라 군사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할 목적으로 탱그 300, 비행기 200, 각종 포약 1500문 등 소련제 무기를 제공 받아 남한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준비를 완료했다. 란코프는 북한 군부가 이미 1947년 남침계획을 입안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은 그해 5월 자신의 군대인 인민군 집단군총사령부를 준비해 사실상 완료한 상태이다.